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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시장을 뒤돌아보며, 비트코인 외의 것들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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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nyacat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봤다
처음 코인이라는 것을 접한 건 2017년 ICO 붐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업비트에서 폰으로 코인을 사고팔던 시절. 당시에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투기를 했습니다. 이더리움 ICO가 2014년에 있었고, 그 위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자체 토큰을 발행하며 자금을 모으던 때였습니다. 2017년 한 해에만 ICO로 60억 달러 이상이 모였다고 합니다. 한국도 그 열풍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업비트, 빗썸 같은 거래소에서 알트코인들이 며칠 만에 몇 배씩 오르는 걸 보면서, 나도 조금씩 사고팔기를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블록체인이 뭔지, 스마트 컨트랙트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차트를 보고, 텔레그램 방의 정보를 보고, 오르면 사고 떨어지면 팔았습니다. 꿈을 쫓은 게 아니라 자본을 쫓았습니다. 이더리움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믿음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돈이 되니까 했습니다. 2017년 말 비트코인이 2만 달러를 찍고, 2018년 초에 폭락이 왔을 때 나는 이미 대부분 빠져나와 있었습니다. 크게 벌지도, 크게 잃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코인 시장은 잊고 살았습니다. 암호화폐 겨울이라고 불리던 2018-2019년. 비트코인 가격이 3천 달러대까지 떨어졌던 시절. 그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건 2020년, 이더리움 채굴 수익이 다시 괜찮아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여러 그래픽카드를 비교했는데, RTX 3070이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가 가장 좋았습니다. 부모님 사업장 창고에 공간이 있었기에, 그래픽카드를 수십 장 사서 채굴기를 설치했습니다. 여름에는 덥긴 했지만, 에어컨을 쓰진 않았습니다. 바람길을 만들어서 열을 빼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전기요금도 미리 계산하고 시작한 거라, 고지서를 볼 때 특별히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채굴은 2022년 9월까지 계속했습니다. 이더리움이 PoS(지분증명)로 전환하는 The Merge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지막에 용산에서 그래픽카드를 처분하고 정산했을 때, 총 수익률은 약 20% 정도였습니다. CAPEX(설비 투자비)와 OPEX(운영비, 주로 전기요금)를 모두 고려한 순이익 기준입니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더 벌었겠지만, The Merge 이후에 이더리움 외에 채굴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대안 코인은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에 미련 없이 정리했습니다.
그 사이에 DeFi Summer가 있었습니다. 2020년 여름, Compound가 COMP 토큰을 에어드랍하면서 시작된 유동성 채굴 열풍. Compound, Aave, Uniswap, Sushiswap, Yearn Finance 같은 프로토콜들이 주목받았습니다. 2020년 초 6억 달러 수준이던 DeFi TVL(Total Value Locked)은 연말에 16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1년 만에 20배 성장이라는 숫자는 분명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도 일부 자산을 DeFi 프로토콜에 넣어봤습니다. 스마트 컨트랙트 리스크, 러그풀(프로젝트팀이 자금을 들고 튀는 것) 리스크, 비영구적 손실(Impermanent Loss) 같은 개념들을 공부하면서 조심스럽게 참여했습니다. 비영구적 손실이란, 유동성 풀에 자산을 넣었을 때 가격 변동으로 인해 그냥 들고 있었을 때보다 손해를 보는 현상입니다. 복잡한 개념이지만, DeFi에 참여하려면 알아야 했습니다.
2021년에는 P2E(Play-to-Earn)와 GameFi가 뜨거워졌습니다. Axie Infinity가 특히 유명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Axie로 월급보다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뉴스가 돌았습니다. 나도 디스코드에서 길드를 만들어서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수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스칼라십이라고 불리는 구조였는데, 내가 초기 Axie를 제공하고 실제 게임은 베트남 친구들이 하면서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큰 수익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DeFi Kingdoms라는 게임도 있었습니다. 2021년 8월에 Harmony 체인 위에서 출시된 게임인데, Taiki Maeda라는 유튜버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JEWEL이라는 토큰 파밍으로 접근했습니다. 게임 자체는 자본 투자보다는 순전히 신기함에 조금 해봤습니다. 16비트 픽셀 그래픽의 판타지 세계에서 영웅을 키우고, 퀘스트를 하고, 가상의 토지를 거래하는 게임. 지금은 그때 샀던 영웅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루나가 무너졌습니다.

2022년 5월, 그 충격파
2022년 5월 7일, TerraUSD(UST)가 달러 페깅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5월 9일에는 완전히 페깅이 깨졌고, LUNA 토큰 가격은 99% 이상 폭락했습니다. 며칠 만에 시가총액 600억 달러가 거의 0으로 수렴했습니다. 암호화폐 역사상 가장 빠르고 충격적인 자산 소멸 중 하나였습니다.
Anchor Protocol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여기에 UST를 예치하면 연 20% 가까운 이자를 줬습니다. "왜 이렇게 높은 이자를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복잡했고, 솔직히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루나 재단이 보조금을 지급한다, 알고리즘으로 균형을 맞춘다, 성장하면 지속 가능해진다... 여러 설명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속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이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됐습니다.
UST 가격이 1달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패닉이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이 UST를 LUNA로 바꾸고, LUNA를 팔기 시작하자 LUNA 가격도 폭락했습니다. LUNA 가격이 떨어지니 UST를 뒷받침할 담보가 줄었고, 이는 다시 UST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악순환이 며칠 만에 전체 생태계를 무너뜨렸습니다.
나는 다행히 UST나 LUNA에 큰 돈을 넣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큰 손실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대출까지 받아서 넣었다가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테라와 루나를 만든 Do Kwon이 한국인이었고, 한국 투자자들이 많이 참여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특히 피해가 컸습니다.
루나 사태 이후 연쇄 반응이 시작됐습니다. Three Arrows Capital(3AC)이 파산했습니다. 한때 1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던 헤지펀드가 루나와 연결된 포지션들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Celsius Network도 인출을 중단했습니다. 고객들의 암호화폐를 운용해서 높은 이자를 지급하던 이 회사는, 결국 고객 자산을 돌려주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미 2022년 2월에 Axie Infinity의 SLP 토큰은 고점 대비 99% 폭락한 상태였고, P2E 시장 전체가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루나 사태는 그 마지막 일격이었습니다.
"코인 윈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6만 달러대에서 1만 6천 달러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더리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장 전체가 얼어붙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더군요.
계속 나타나는 새로운 것들
루나 사태 이후에도 새로운 것들은 계속 나왔습니다. 시장이 어떻게 되든, 사람들의 투기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자극적인 것들이 등장했습니다.
AI 토큰의 물결: 2023년 ChatGPT가 세상을 뒤흔든 이후, AI 테마가 묻은 토큰들이 우후죽순 등장했습니다. Eliza, Cookie.com, Fartcoin 같은 것들. 솔직히 이 프로젝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요? 백서를 읽어봐도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적 혁신이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냥 AI라는 단어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돈이 몰렸고, AI x Crypto라는 키워드 하나로 수천 퍼센트씩 오르는 토큰들이 있었습니다.
2024년에는 AI 에이전트 토큰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도 생겼습니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AI가 암호화폐 지갑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거래를 한다는 컨셉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였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컨셉만 있고 실제 기술은 부실했습니다. 몇몇은 정말 혁신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pump.fun의 광란: 솔라나 기반 밈코인 런치패드 pump.fun은 누구나 몇 분 만에 토큰을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프로그래밍 지식도 필요 없었습니다. 이름을 정하고, 간단한 설명을 쓰고, 이미지를 올리면 바로 토큰이 생성됐습니다. 2024년에만 수백만 개의 토큰이 이 플랫폼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대부분의 토큰은 24시간 내에 99% 하락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토큰은, 정말 소수의 토큰만은 급등했고, 초기 진입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거뒀습니다. 복권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런 구조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나도 저런 행운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예측 시장의 성장: Polymarket, Kalshi 같은 예측 시장 플랫폼이 주목받았습니다. 말이 좋아 예측 시장이지, 본질적으로는 온라인 베팅 플랫폼이었습니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Polymarket의 거래량이 폭발했습니다. 트럼프가 이길 확률, 바이든이 사퇴할 확률 같은 질문에 수백만 달러가 걸렸습니다. 2024년 Polymarket의 누적 거래량은 9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5년 12월까지 215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정치와 스포츠에 수십억 달러가 걸리는 시장이 된 것입니다. 2025년에는 NYSE 모회사 Intercontinental Exchange로부터 2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90억 달러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았습니다.
나는 이것들을 지켜봤습니다. 어떤 것은 조금 해봤고, 어떤 것은 그냥 뉴스로만 봤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은 폰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불편한 결론이지만,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은 폰지 구조였습니다.폰지 스킴(Ponzi Scheme)이란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실질적인 사업 수익이나 가치 창출 없이, 단지 돈의 흐름만으로 유지됩니다. 새로운 투자자의 유입이 멈추면, 시스템은 붕괴합니다. 코인 시장의 많은 프로젝트들이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나중에 들어온 사람의 돈을 가져가는 구조. 창업자들은 토큰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그 돈으로 Exit했습니다. 이건 전통 금융에서 IPO를 통해 Exit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규제가 없었기에 훨씬 쉽고 빠르게 진행됐을 뿐입니다.
토큰 가격이 오르면 경영진과 초기 투자자들이 매도했습니다. 락업 기간이 끝나면 VC 물량이 풀렸고, 팀 물량이 풀렸습니다. 주식시장에서 "경영진 매도빔"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훨씬 노골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매도 물량을 받아서 손실을 본 건 개인 투자자들이었습니다.
"탈중앙화된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슬로건이 있었습니다. "은행 없는 금융",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금융", "투명한 금융"... 그럴듯한 이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슬로건 뒤에서는 결국 제로섬 게임의 룰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익은 다른 누군가의 손실이었습니다. 새로운 사용자의 유입이 멈추면 가격은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맨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이 손실을 봤습니다.
금융 니힐리즘(Financial Nihilism)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차피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으니, 차라리 하이리스크 도박판에서 한 방을 노리자는 심리. 어차피 집값을 모아서 살 수 없으니, 차라리 코인으로 몇 배를 벌어보자는 생각. 이런 정서가 팽배한 시장에서 진지한 투자를 논하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살아남은 것들
비판적인 시선으로 봤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것들이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혼란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 것들. 내가 보기에는 세 가지입니다.
비트코인
비트코인은 이제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와 함께 이 시장의 상징이 됐습니다. 세일러는 MicroStrategy의 CEO로, 2020년부터 회사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매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미친 짓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비트코인 전도사로 불립니다. 2025년 12월 기준, MicroStrategy(현재 사명은 Strategy)는 67만 BTC 이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약 330억 달러 규모입니다. 세일러는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 부르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 수단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그가 비트코인에 대한 제도권의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2024년 1월, 미국 SEC가 스팟 비트코인 ETF를 승인했습니다. BlackRock의 iShares Bitcoin Trust(IBIT)는 출시 첫 주에 10억 달러 AUM을 돌파하며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ETF로 기록됐습니다. Fidelity, Invesco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비트코인 ETF를 출시했습니다. 2025년 말 기준 스팟 비트코인 ETF 전체 AUM은 1,37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비트코인은 더 이상 사이퍼펑크의 실험이 아닙니다. 더 이상 마약 거래나 불법 자금 세탁에만 쓰이는 게 아닙니다. 기관투자자 포트폴리오에 들어가는 합법적 자산 클래스가 됐습니다. 연금 펀드가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상장 기업이 재무제표에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기록합니다.
물론 비트코인이 완벽한 가치 저장 수단인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가격 변동성이 크고, 규제 리스크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살아남았고, 제도권에 편입됐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은 코인 생태계에서 가장 실용적인 생존자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 유로 등 법정화폐에 가치가 연동된 암호화폐입니다. 1 USDT = 1 USD, 1 USDC = 1 USD. 이론적으로는 언제든 1:1로 교환 가능합니다. 2026년 1월 기준,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3,08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2024년 말 약 1,930억 달러에서 50% 이상 성장한 수치입니다. Tether(USDT)가 전체 시장의 약 60%를, Circle의 USDC가 약 2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성장한 이유는 그 실용성에 있습니다. 국경을 넘는 송금이 빠르고 저렴합니다. 전통적인 은행 송금은 며칠이 걸리고 수수료도 비쌉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몇 분이면 되고, 수수료도 훨씬 낮습니다. 신흥국에서는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의 스테이블코인
한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2024년 국내 5대 원화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에서 거래된 USDT는 한 해 동안 약 94조 원 규모에 달했습니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2024년 7월 1,741억 원에서 12월에는 1조 원을 넘어서며 급증했습니다.
2025년에 들어서는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졌습니다. 2025년 1분기에만 USDT, USDC, USDS 등 달러 표시 스테이블코인 거래대금이 총 57조 원을 기록했고, 이 중 USDT가 47조 3,311억 원(83.1%)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USDC는 9조 6,186억 원(16.9%)을 기록했습니다. 2025년 상반기 전체로 보면 약 80조 8,192억 원(약 591억 달러)이 거래되었는데, 이는 2024년 상반기 대비 188.3% 증가한 수치입니다.
한국에서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활발한 이유는 주로 해외 거래소로 자산을 이동하거나, 외환 용도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국내 거래소에서 USDT나 USDC를 매수한 뒤 바이낸스 같은 글로벌 거래소로 송금하면, 원화를 달러로 바꾸지 않고도 해외 시장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크립토 기반 환전 시스템인 셈입니다.
USDT와 USDC 발행사들은 받은 달러를 어디에 예치할까요? 대부분 미국 국채입니다. Circle은 2024년 현금 및 현금성 자산에서 16.6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성장할수록,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국채 수요가 발생하는 셈입니다. Citi는 2030년까지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1.6~3.7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수천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 보유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탈중앙화 금융"의 핵심 인프라인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도구가 된 셈입니다.
GENIUS Act 등 규제 프레임워크가 정비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은 회색 지대에서 합법적 금융 인프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예측 시장
마지막으로, 예측 시장도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말이 좋아 예측 시장이지, 본질은 도박장 아닌가?라는 비판에 일리가 있습니다. 특정 사건의 결과에 돈을 거는 건 도박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2024년 미국 대선에서 Polymarket은 전통 여론조사보다 정확한 예측을 내놓으며 주목받았습니다. 선거 당일 밤, 전통 미디어들이 아직 결과를 예측하지 못할 때, Polymarket은 이미 트럼프 승리 확률을 90% 이상으로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예측 시장이 순수한 도박과 다른 점은 정보 집합 기능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자신의 돈을 걸고 예측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가장 정확한 집단 지성이 형성됩니다. 단순히 의견을 물어보는 여론조사와 달리, 예측 시장에서는 틀리면 돈을 잃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신중하게, 더 정보에 기반해서 베팅한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조작 가능성, 유동성 제한, 규제 리스크 등 문제점도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 시장이 규제권 내로 들어오며 합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수많은 코인 프로젝트들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듭니다.
Winner takes all.비트코인, 스테이블코인, 예측 시장. 세 가지가 살아남았다고 썼지만, 솔직히 말하면 스테이블코인은 투자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1 USDT는 1달러고, 1 USDC도 1달러입니다. 가치가 오르지 않습니다. 그냥 달러를 보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측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베팅에서 이기면 돈을 벌고, 지면 잃습니다. 이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입니다.
결국 투자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비트코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깨달음이 옵니다. 2017년 ICO 시절의 알트코인 투기, 2020년의 이더리움 채굴, DeFi 프로토콜 유동성 마이닝, Axie Infinity와 DeFi Kingdoms 같은 P2E 게임, AI 토큰, 밈코인... 이것저것 기웃거리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썼습니다. 물론 잃은 건 없습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자본으로 참여했으니까요.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비트코인만 묵묵히 모았다면 어땠을까요?
2017년에 비트코인 가격은 약 1,000달러에서 시작해서 연말에 2만 달러를 찍었습니다. 2020년에는 약 7,000달러였습니다. 2021년에는 6만 달러를 넘었다가, 2022년에는 1만 6천 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2024년에 다시 6만 달러를 돌파했고, 2025년 말에는 10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2020년에 비트코인을 사서 들고만 있었어도, 지금은 15배 이상의 수익을 봤을 겁니다. 2017년 초에 샀다면? 100배입니다.
다른 거 신경 쓰지 않고 비트코인만 모았다면, 그게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전략이었을 겁니다.
이더리움은요? 살아남긴 했지만, 비트코인 대비 수익률은 좀 더 복잡합니다. 2020년에 이더리움 가격은 약 130달러였고, 2025년 말에는 약 3,800달러입니다. 약 29배. 수치상으로는 비트코인보다 나아 보이지만, 이더리움은 중간에 훨씬 많은 리스크에 노출됐습니다. 2022년 9월의 PoS 전환(The Merge) 리스크, 경쟁 체인들의 위협, 규제 불확실성... 그리고 이더리움을 샀다면 결국 이더리움 생태계의 다른 토큰들에도 손을 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처럼.
나머지 알트코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DeFi 토큰들, P2E 토큰들, AI 토큰들... 대부분은 고점 대비 90% 이상 하락했습니다. 어떤 것들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운이 좋게 초기에 들어가서 고점에 팔았다면 수익을 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Winner takes all"입니다. 코인 시장에서 승자는 비트코인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비트코인의 들러리였습니다. 물론 이건 지금 시점에서 하는 후견지명입니다. 과거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가장 단순한 선택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기억으로 남기며
나는 코인 시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제는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무엇이 살아남을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비트코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비트코인이었고, 지금도 비트코인이고, 아마 앞으로도 비트코인일 겁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코인 시장 안에서의 달러 역할을 합니다. 유용하지만, 투자 대상은 아닙니다. 예측 시장은 재미있는 구경거리입니다. 돈을 걸면 더 재미있지만, 이건 도박이지 투자가 아닙니다.
"투자"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결국 비트코인뿐이었습니다.
이 결론은 아쉽기도 합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이것저것 공부하고, 분석하고, 참여했는데, 결론이 그냥 비트코인 사라니. 너무 단순한 결론입니다. 그러나 투자에서는 종종 단순한 답이 맞습니다. 복잡한 전략이 복잡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잘못한 건 없습니다. 큰 손실도 없었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채굴기를 운영하면서 하드웨어에 대해 배웠고, DeFi를 하면서 스마트 컨트랙트에 대해 배웠고, 길드를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협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쓴 시간이 아깝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음에 또 뭔가 새로운 게 나오면 나는 여전히 관심을 가질 생각입니다. AI x 크립토든, VR x 크립토든, 양자컴퓨팅 x 크립토든. 어떤 새로운 서사가 등장하더라도,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입니다.
하지만 접근 방식은 달라질 것입니다. 비트코인을 핵심 대체 자산으로 중심에 두고, 새로운 기회들을 훨씬 더 조심스럽게 탐구할 것입니다. 이해도가 높아진 만큼, 리스크를 감수할 때와 피해야 할 때를 더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는 카지노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시장의 관찰자이자 신중한 투자자로 남을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의견입니다. 투자 조언이 아니며, 모든 투자 결정은 독자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